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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작성일 2020-02-21 (금)
ㆍ추천: 0  ㆍ조회: 139    
초인을 기다리는 사람 - 최한석 씨의 삶 - ①






초인을 기다리는 사람



지체장애 최한석 씨의 삶 - ①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0-02-21 15:03:30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 시는 이육사의 ‘청포도’다. 청포도가 익어 가는 내 고장 칠월의 자연적 배경 아래,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오는 손님을 기다리는 시인의 마음이 절절하다.

‘청포도’는 나라를 잃고 먼 이역 땅에서 고국을 바라다보는 시적 자아의 안타까운 마음과 향수, 그리고 암울한 민족현실을 극복하고 밝은 내일에의 기다림과 염원을 노래하고 있다.

‘청포도’가 쓰인 시기는 일제강점기로 암울한 식민지 상황을 감안할 때 시인이 그토록 기다리는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여는’ 그날은 바로 조국 광복이 이루어지는 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육사의 청포도 시비. ⓒ우정사업본부e기자단카페 에이블포토로 보기 이육사의 청포도 시비. ⓒ우정사업본부e기자단카페

이육사(李陸史)의 본명은 이원록(李源祿)인데, 1904년 4월 4일에 경북 안동 원촌리에서 퇴계 이황의 14대손으로 태어났다. 1943년 독립운동을 위해 북경으로 갔다가 4월에 귀국하였고,6월에 피검되어 수감 중 다음 해인 1944년 1월 옥사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이육사라는 이름은 대구은행 폭파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때, 그의 수인번호가 264번이어서, ⼆六四(이육사)의 한자의 음을 따서 李陸史(이육사)로 한자를 고친 후 이를 호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경북 포항시 남구 동해면 해안도로에 이육사의 시비 청포도가 세워져 있다.

지금은 식민지 시대도 아니고 더구나 청포도가 열리는 칠월도 아닌 한겨울인데, 웬 청포도를 들고 나왔을까. 최한석 씨는 어린 시절 꿈도 없고 희망도 없었다고 한다. 하루하루 산다는 게 치열한 투쟁이었고 어떻게 하면 남들에게 뒤지지 않고 쫓아가느냐가 관건이었다고 했다.

그런 최한석 씨에게 좋아하는 시가 있느냐고 물었을 때 왠지 잘 모르겠지만, 이육사의 ‘청포도’가 생각난다고 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청포를 입고 찾아올 누군가를 기다린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광야’의 초인 같은 사람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최한석(1963년생) 씨는 경상북도 군위군 산성면 삼산 1동에서 2남 1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면사무소에 근무하는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농사를 짓는 가정주부였지만, 집안은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삼촌 등 10여 명이 사는 대가족이었다.

최한석 : “돌잔치 때 고모를 저를 안고 있다가, 내려놨다는데 그대로 쓰러지더랍니다. 그래서 애먼 고모만 혼이 났답니다.”

애가 돌잔치 때 갑자기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고모 탓을 했다. 당시 고모도 겨우 열댓 살의 어린아이인데 고모가 아이를 떨어뜨려서 그리되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아이를 업고 여기저기 병원을 쫓아다녔다. 대구 어느 병원 소아과에서 소아마비라고 진단했다. 그의 왼쪽 다리는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아이를 좋다는 곳은 다 찾아다녔다. 처음에는 병원에 다니다가 소용이 없자 나중에는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집에서는 탕약을 달였다.

최한석 씨.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최한석 씨. ⓒ이복남

소아마비는 폴리오(Polio) 바이러스에 의한 신경계의 감염으로 발생하며 척수성 소아마비의 형태로 발병한다. 5세 이하의 아이가 걸리는 경향이 많아 병명에 소아(小兒)가 들어가지만, 아이만 걸리는 병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이 소아마비지만, 대표적인 예로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1921년 8월 39살의 나이에 소아마비에 걸려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지만 꾸준한 재활 훈련 끝에 어느 정도는 걸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소아마비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있었는데 1955년 미국 의사 조너스 에드워드 솔크(Jonas Edward Salk)가 발명한 백신으로 인해서 소아마비는 점차 감소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소아마비 예방접종으로 소아마비는 점점 줄어들어 1983년 이후 소아마비 환자는 발생하지 않았고, WHO는 1994년 서유럽, 2000년에는 한국을 포함한 서태평양 지역에서 소아마비 박멸을 선언하였다.

소아마비는 그의 왼쪽다리를 덮쳤고, 그의 왼쪽다리는 마르고 비틀어졌다.

“그러나 목발은 안 짚었고 동네친구들 하고도 잘 놀았습니다.”

그는 왼손으로 왼쪽다리의 무릎 위를 짚고 다녔는데 달리기 외에는 다 할 수가 있었다.

“그동안 어머니가 좋다는 곳은 다 다니고, 여러 가지 탕약을 달였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어머니의 지극정성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 당시 보통의 아이들이 하는 놀이로 구슬치기 딱지치기 등을 하면서 동네아이들과 잘 어울렸다고 했다.

“산성국민학교에 입학했는데, 처음에는 어머니가 업고 갔는지 잘 모르겠지만 제 기억으로는 왼손으로 왼쪽 다리를 짚고 다녔습니다.”

그 무렵 소아마비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이었는데 학교에 다른 소아마비 학생은 없었을까.

“학교에는 소아마비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고, 동네에 소아마비 형이 한 사람 있었는데, 그 형은 사지마비라 학교도 잘 못 다니고 집안에만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체육 시간에는 대부분의 지체장애인처럼 교실지킴이를 했다지만 공부는 어떻게 하였을까.

“공부요? 사실 공부 같은 것에는 별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에 관심이 있었을까.

“앞에 어떤 목표나 희망이 있어서 그것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아야만 했습니다. 물론 주위 어른과 친구들의 성원을 많이 받았지만, 당시에는 그것마저 동정이라고 생각하는 삐뚤어진 마음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차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내면에는 조부모님과 부모님 등 그를 바라보는 가족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렸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이복남

“모든 면에서 뒤처지고 따라가기 힘들었지만 그런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습니다.”

앞서가는 사람들에게 지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은 어쩌면 객기였는지도 모른다.

“저를 건드린 사람은 기어이 따라잡아야 한다는 자격지심이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못하는 것에 대한 반항이자 오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심리적인 것일 테고, 물리적으로도 학교가 멀지는 않았을까.

“아버지가 공무원으로 재직하셔서 전근이 많았는데 그 덕분에 국민학교를 네 군데나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산성국민학교를 3년 다녔고, 그다음에는 성남국민학교 1년, 고로국민학교1년, 그리고 대구 삼덕국민학교에서 졸업을 했습니다.”

어느 학교를 가도 반 친구들이 반겨주기는 했지만, 정이 들 만하면 타 학교로 전학을 가는 바람에 변변한 친구들을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그런지 이렇다 할 유년 시절의 기억이 뚜렷하게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변명 같지만, 항상 전학 간 학교에 적응을 못 한 것이 아마도 성장기의 꿈이 없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도 가끔 고향을 방문하면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내 이름을 부르면서 반가워하며 인사를 하는데 난 그 사람의 이름은 물론이고 어디서 봤는지 선배인지 후배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가 어리둥절해 하면 난 누구고 너보다는 형이다, 아님 친구라고 자신을 이야기해 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모르긴 매일반이다.

“어떤 때는 학교가 십리 길은 되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걸어가거나 달려가기도 했는데 저는 그러지 못하니까 항상 뒤처졌습니다.”

친구들이 가방을 들어주기도 했지만, 그가 친구들과 보조를 못 맞추니까 친구들이 앞서가다가 기다려주기도 했으나 그것이 한편은 고맙기도 했지만 때로는 너무나 자존심이 상했다고 했다.

“집에 자전거가 한 대 있었는데 아버지 출퇴근용이었습니다.”

자전거를 한 대 사주면 안 되었을까.

“시골에서 자전거 한 대가 그렇게 만만한 재산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퇴근해 오시면 몰래 자전거를 끌고 나가서 연습하다가 몇 번이나 처박기도 했다. <2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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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남 기자 (gktkr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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