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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작성일 2019-02-26 (화)
ㆍ추천: 0  ㆍ조회: 114    
더 넓은 세상을 향하여 - 최영주 씨의 삶 - ②






더 넓은 세상을 향하여



지체장애 1급 최영주 씨의 삶 - ②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9-02-26 10:48:14


그는 한림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선생이 천자문을 가르쳐 주셨다. 공부는 재미가 있었지만 싸움 좀 할 줄 아는 몇몇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3학년 때 급식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급식소에서 식판에 급식을 받아 왔는데 그는 식판을 들 수가 없으므로 선생은 다른 아이들에게 당번제로 그의 식판을 들고 교실에 갖다 주라고 했다.

“아이들은 내 식판을 갖다 주기 싫었는지 어떤 날은 모래를 뿌려오기도 했고 어떤 날은 식판을 흔들어 음식을 뒤죽박죽 해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선생에게 이르지도 않았단다. 그러면 아예 식판을 안 가져다 줄까봐.

어느 식당에서.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어느 식당에서. ⓒ이복남


“선생은 단체기합을 잘 주셨는데 단체기합에서 항상 저는 빼 놓으시니까 그 친구들에게는 더 미웠는지도 모르지요.”

어머니는 자전거 앞 바구니에 여동생을 앉히고 그는 어머니 앞에 앉아서 학교로 오갔다. 몇몇 친구들에게서 미움 받는 왕따로 어렵게 학교를 다니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 속에서 자전거로 학교로 데려갔다가 데려오는 어머니의 고충도 말이 아니었다.

“하루는 이모가 오셔서 이렇게는 안 되겠다며 저를 다른 데로 보내라고 했습니다.”

이모가 집을 떠나라고 하다니, 이모가 아이를 보내라고 하는 데는 경기도 광주에 있는 삼육재활학교였다.

“삼육재활학교에 가서야 제가 근육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삼육재활학교에는 5학년으로 전학을 했다. 모두가 다 장애인이므로 일반학교에서처럼 놀리거나 따돌림 같은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일반학교 다닐 때는 그가 숙제를 하든 안 하든 별 관심이 없었는데, 삼육에서는 공부를 안 하고 숙제를 안 하면 야단을 맞았다. 5학년까지는 그럭저럭 잘 버텼다.

6학년이 되서야 깨달았다. 그가 너무 많은 것을 몰랐다는 것을. 더하기 빼기는 했으나 분수나 곱셈도 잘 몰랐던 그는 방과 후에 따로 남아서 6학년 담임선생님께 배워야 했다. 방과 후에도 남아서 공부를 가르쳐 주신 담임선생님을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단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한 덕분에 초등학교 과정은 거의 다 뗄 수 있었다.

그런데 삼육재활원에 처음 들어갔을 때부터 휠체어랑 침대생활을 하다 보니 더 이상 방바닥으로 내려 올 수가 없었다. 목발하고도 자연히 멀어졌다.

“초등학생은 재활병동에서 생활했는데 한 달에 한 번은 병동을 나가야 했습니다.”

그가 병동을 나가야 하는 날은 어머니가 그를 데리러 왔다. 김해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성남으로 와서 택시를 타고 학교로 와서 다시 고속버스를 타고 김해 집으로 가야 했다. 그 일을 5학년 그리고 6학년까지 방학을 뺀다 해도 20여 개월을 한 셈이다.

“어머니 등에 업혀서 모란시장 구경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수고와 고생은 아랑곳없이 그는 어머니 등에 업혀서 세상 구경도 하고 집에 가는 것이 마냥 좋기도 하였다.

근육장애인 문화체험행사.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근육장애인 문화체험행사. ⓒ이복남


중학생이 되자 재활병동에서 나와야 했다. 기숙사에 사니까 한 달에 한 번씩 집에 가는 것은 안 해도 되고 여름과 겨울 방학 때만 집에 가도되었다.

당시에는 수동휠체어를 타고 다녔는데 보통의 아이들처럼 질풍노도의 시간이었다. 학교는 남녀공학이었다. 그 때 기숙사는 A동, B동, C동 세 개가 있었는데 A동과 C동은 남학생 기숙사고 B동은 여학생 기숙사였다. B동은 남학생은 절대 출입금지였다.

연애랄 것도 없지만,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는 공중전화기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이야기 할 수 있는 메신저 같은 ARS기능이 있었다. 거기서 어떤 여학생을 알게 되어서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삐삐도 치곤했다.

“삐삐나 전화 말고 실제로 여학생과 연애를 해 본적은 없습니다.”

여학생과 만나기로 했다가 어긋나기도 했고 그러다가 흐지부지 세월이 흐르고 말았다. 중학생 때는 ‘소리샘’이라는 방송반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미술 선생님을 통해 전동휠체어를 받았다. 수동휠체어를 타다가 전동휠체어를 타니까 날아갈 것 같았다. 기동성이 좋아지니까 여기저기 쏘다니기도 했다.

“그러면서 순전히 객기로 일을 하나 저질렀습니다.”

중학생 때 선배 하나가 제법 좋은 컴퓨터를 가지고 있었다. 몇몇이 친구들이 공모를 했다. 선배의 컴퓨터를 팔아먹기로.

“선배의 컴퓨터 부품을 뜯어서 용산 상가에 팔아묵었습니다.”

발달장애인 한 친구가 신체적으로는 건강하고 힘이 좋아서, 다른 한 친구가 그 발달장애인 친구와 함께 택시를 타고 용산까지 다녀왔다. 원래 기숙사에서는 외출증이나 외박증이 없으면 시설을 빠져나가는 것도 그 때 당시는 규칙위반이었다.

물론 그는 용산상가까지는 가지 않았고 30만 원쯤 받았는데 그 돈으로 몇몇 친구들과 어울려 병원 옥상에서 짜장면과 탕수육 등 중국집 배달음식을 시켜먹었다.

“생각해 보면 질풍노도 시기의 철없는 객기였지요.”

차오름 송년회에서.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차오름 송년회에서. ⓒ이복남


저녁에 컴퓨터 주인인 선배가 발견해서 기숙사 사감에게 이야기를 했고, 점호시간에 기숙사가 발칵 뒤집어졌다. 점호시간에 모두 모여서 눈을 감고 자수하라고 했는데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나중에 학교 선생님들까지 기숙사 도난 사건에 합류하면서 경찰까지 오게 되자 무섭고 겁이 난 학생들이 범행을 실토했습니다.”

병원 옥상에서 짜장면을 같이 먹었던 아이들도 공범이었다. 정학을 맞았다. 하는 수 없이 어머니를 불러서 집으로 내려왔다.

“착한 줄 만 알았던 내 아들이 도둑이라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한림 집으로 내왔을 때 마침 태풍이 불었다. 낙동강은 범람하고 컴퓨터도 안 되고 인터넷도 끊겼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집안에서 나름대로 반성 많이 했습니다.”

어머니도 그 때 당시 집에 내려와서 마음고생이 심한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그런데 삼육학교에 다니면서 아예 방바닥 생활을 하지 않고 휠체어를 사용했다. 그래서 그런지 중학생이 되면서 점점 살이 찌기 시작했다. 삼육병원 방사선 의사선생님도 살을 빼야 한다고 했다. 더 찌면 나중에 폐가 눌려서 생명에 지장이 있다는 것이다.

“그 때는 참 어리석게도 선생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계속 맛있는 것만 먹고 다녔더니 몸무게가 100kg로 향해가고 있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허리가 점점 굽어졌다. 그래서 배불리 먹으면 숨이 차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 때는 잘 몰랐다. 고등학생이 되자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직감했다. 손톱에 아래 부분이 검게 변하고, 머리도 하늘에 붕 뜬 기분이 들고 자고 일어나도 머리가 맑지 않았고 잠도 많이 왔다.

자갈치에서.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자갈치에서. ⓒ이복남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면 잠만 오고 머리가 아팠다.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죽을 것 같았다. 고2학년 방학이 되자마자 **병원에 갔다. 그런데 근육병을 잘 모르는 의사선생님은 그냥 50~60대에 잘 걸리는 협심증이라는 이야기만 했다. 할 수 없이 큰마음 먹고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 입원을 했다. 이산화탄소가 70~80정도로 너무 높아서 머리가 어지럽고, 악몽을 꾸고, 손톱 밑이 검게 변했다는 것이다.

“인공호흡기를 하고 이산화탄소를 낮추는 방향으로 치료를 받았습니다. 지금이야 인공호흡기 기계가 많이 작아졌지만 제가 할 때는 엄청 컸습니다.”

특히 잘 때 입을 벌리고 자서 호흡기가 불어주는 공기가 다 빠지는 바람에 밤새도록 어머니가 지켜봐야 했다.

나중에 퇴원을 했지만 인공호흡기를 들고 다니기에는 너무 힘이 들었다. 고등학교 기숙사에서도 인공호흡기를 하니깐 위험한 줄 알고 받아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삼육병원에 입원해서 고3 학년 수업을 마칠 수 있었다.

“학교에서 컴퓨터를 배웠는데 컴퓨터 관련 대회에도 나가서 입상을 하곤 했습니다.”

덕분에 한국복지대학교 컴퓨터게임개발과에 수시로 합격했다. 삼육에 있을 때도 휠체어에서 침대로 혼자 옮겨가기 어려웠으므로 다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처음 대학 갔을 때 부모님께서 비장애인 1학년 룸메이트 친구에게 부탁했더니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해놓고 자기는 바쁘다고 제가 필요로 할 때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

“옆방에 청각장애인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를 불러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래서 2학기부터는 아예 그 청각장애인 친구를 룸메이트로 정했다.

“그 청각장애인 친구하고는 지금도 가끔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 접할 때면 불안했다. 그러나 대학에서 청각장애인 친구를 만나면서부터 어디선가 다 살길이 생기는 거라고 느꼈고 사실 또 그랬다. <3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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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남 기자 (gktkr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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