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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작성일 2019-01-18 (금)
ㆍ추천: 0  ㆍ조회: 94    
더 이상 아무것도 바랄 게 없어 -허미순 씨의 삶 - ③




더 이상 아무것도 바랄 게 없어

지체장애 3급 허미순 씨의 삶 - ③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9-01-18 14:12:33
한편 생각할수록 남편이 밉고 괘씸했다. 이미 남편의 사촌 중에서 근디스트로피가 있었는데 남편은 허미순 씨에게 그 얘기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기에 어쩔 수 없었지만 유전이라니 아이들이 걱정이었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부산근육장애인협회가 있었다. 조봉현 회장을 찾아갔더니 근육병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설명해 주었다.

“근육병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는데 현재까지 아들들에게 나타나지 않았다면 안심해도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마음이 안 놓입니다.”

조봉현 회장도 직장인이고 허미순 씨도 직장인이라 주말이나 휴일 등이면 같이 만나서 협회 관련 일을 하곤 했다.

어느 행사장에서 남편과 함께.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어느 행사장에서 남편과 함께. ⓒ이복남


조봉현 회장은 필자도 아는 사람인데 계단 앞에 서면 절벽 앞에 선 것처럼 절망적이라고 했었다. 근육장애인은 평지라면 그런대로 걸을 수 있었으나 계단 등 단차가 있는 턱은 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근육병은 염색체 열성유전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패턴이 여러 가지다. 진단은 주로 근전도와 근육생검(근육 조직검사)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최근에는 혈액검사를 통하여 백혈구를 이용한 유전자(DNA) 분석으로 진단을 내릴 수가 있다고 한다.

세계적인 석학 스티븐 호킹이 앓고 있던 루게릭병도 대표적인 근육병 중의 하나이다. 근육병은 근육을 유지하는 단백질의 결핍으로 근육이 제 구실을 못하다가 몸이 마비되고, 폐렴이나 심장마비, 호흡 곤란 등으로 결국 숨지고 마는 병이다. 아직까지 발병 원인은 물론 정확한 치료법도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까지의 치료는 가능하면 오랜 기간 동안 보행이 유지되도록 척추와 팔다리의 변형을 막고 교정을 위해 보조기 착용 및 수술을 하는 것이며, 호흡 기능을 최대한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란다.

따라서 근육병으로 진단 받은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 그나마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은 돈이다. 근육병 진단을 받고 나서 희귀난치성질환으로 산정특례를 받으면 본인부담률은 10%이고,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는 무료다

그가 직장을 다니면서 월급을 받았지만 남편의 병원비랑 집안의 생활비 등 격심한 경제난에 시달려야 했다.

“제가 성당에 다니는데 하루는 우리 대부가 집에 와 보고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며 저더러 이혼을 하라고 했습니다.”

이혼을 하고 남편이 혼자가 된다면 아이들하고 수급자가 되어 남편의 병원비와 아이들 학비가 무료가 된다는 것이었다. 몇 년 전에 남편과 별거 할 때도 이혼은 안했는데, 남편의 병원비라도 지원받기 위해서 하는 수 없이 이혼을 했다.

“8년을 근무했는데 도로공사를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도로공사라면 괜찮은 직장인데 왜 그만두었을까.

“남편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큰아들은 결혼을 해서 집을 떠난 뒤였다. 그가 야간 근무를 할 때면 작은 아들이 아버지를 돌보았는데 작은아들이 해병대 입대를 했다는 것이다. 밤에 남편을 돌보아야 하므로 할 수 없이 직장을 그만 두어야 했다. 그는 남편을 돌보면서 근육장애인협회를 비롯하여 부산여성장애인연대 등에도 조금씩 참여를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자립생활센터가 생겨서 활동보조인 사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도 이혼한 사이라 남편과는 남남이었다. 활동보조인 교육을 받고 남편의 활동보조인이 되었다.

“1년 남짓한 그 때가 내 인생의 봄날이었습니다.”

작은아들도 군에 가고 남편하고 둘이 살았는데 남편도 고분고분 말을 잘 들었다. 허미순 씨가 운전하는 승용차에 남편을 안아서 태우고, 여기저기 행사장에 가서 남편을 태운 휠체어를 밀고 다녔다.

“그 때가 가장 행복했는데 그 행복이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필자가 허미순 씨 인터뷰를 하고 원고를 정리하고 있을 때 장애인이자 자원봉사자인 이윤희 씨가 상담할 게 있다며 찾아 왔다. 이윤희 씨와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이번 달에는 누구를 인터뷰 했느냐고 물어서 허미순 씨라고 했더니 잘 안다고 했다.

이윤희 씨는 나들이 행사에서 허미순 씨를 몇 번 만났는데, 처음에는 자기도 잘 몰랐다고 했다. 무엇을 잘 몰랐다는 말일까.

“대부분의 장애인은 승용차에서 안아서 내리거나 태우는데, 허미순 씨 남편은 갓난아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도 처음에는 보통의 장애인처럼 조심조심 허미순 씨 남편을 안았는데 목이 퍽 꺾여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근육병 장애인은 중증이 되면 갓난아기처럼 목을 못 가눈다는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더욱 조심해서 다루었다고 했다.

손자들과 함께.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손자들과 함께. ⓒ이복남


허미순 씨가 서류상으로는 남편과 이혼한 남남이었지만, 가짜 이혼을 하고 한 집에 산다는 것도 불법이었고 더구나 남편의 활동보조인을 한다는 것도 겁이 나고 두려웠다.

“만약 들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점점 커져서 결국 남편의 활동보조인을 그만두었습니다.”

마침 금정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보조사업을 하고 있어서 남편을 그쪽에 등록 시켜서 활동보조를 받게 하였다. 그 무렵 금정구장애인협회 박동진 회장(지금은 돌아가셨음)이 평소에 그를 눈여겨보았든지 금정구장애인복지관이 설립되는데 살림을 좀 맡아 달라고 했다.

“마침 남편의 활동보조인도 그만두었던 터라 금정구복지관에서 간사로 활동하면서 비품구입 등 잡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1년 쯤 지나자 박동진 회장은 활동보조사업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2011년 금정구장애인복지관에서 장애인지원사업을 시작했다. 남편의 활동보조사업도 그가 일하는 복지관으로 옮겼다.

“정말 열심히 일해서 장애인 이용자나 활동보조인도 많이 확보했습니다.”

그러자 친정어머니에게 병이 왔다. 친정엄마는 연산동 **아파트 1층에 혼자 살고 있었는데 치매가 온 것 같았다.

“본래 우리가 살던 범전동 집은 도로 공사를 하면서 다 뜯기고 15평이 남았는데 엄마는 그 15평에 3층집을 지었습니다.”

엄마는 오래전부터 범전동 집은 허미순 씨에게 준다고 못을 박았다. 그리고 엄마는 연산동 **아파트 혼자 살고 있었는데 그 아파트는 엄마가 돌아가시면 언니들과 동생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 무렵 허미순 씨는 남편과 함께 부곡동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부곡동에서 엄마가 있는 연산동까지 오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아무래도 엄마를 내가 돌보아야 될 것 같아서 남편하고 살림을 합치자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남편도 그러자고 해서 남편이 연산동 아파트로 옮겨 왔다. 그런데 남편이 부곡동에서는 14층에 살았는데 엄마 집 아파트 1층에서는 답답해서 못 살겠다고 했다.

“부곡동 아파트를 내놓으려고 서류를 다해놨는데 남편이 못 살겠다고 해서 남편은 다시 부곡동으로 돌아갔습니다.”

남편은 활동보조시간을 12시간 받았다. 그래서 12시간은 사비로 다른 활동보조인을 이용했다. 엄마는 요양보호 3시간을 받았다.

“직장에 다니면서 남편 집에 갔다가, 엄마 집에 갔다가 하는 생활은 몸도 마음도 지친 지옥 같은 생활이었습니다.”

몇 년 동안 지옥 같은 생활을 근근이 견디며 살고 있었는데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너무너무 슬펐고 안타깝고 어쩌면 시원섭섭한 죽음이었다.

남편의 죽음과 함께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었다. 이제 어머니만 둘이 살면서 어머니만 돌보면 되었는데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어머니도 돌아가셨다.

“엄마 아파트는 팔아서 세 사람에게 똑같이 나누었습니다.”

큰언니는 돌아가셨고, 둘째언니 셋째언니 그리고 동생 등 세 사람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치매 걸린 어머니를 허미순 씨가 오랫동안 간병을 했는데 그 아파트를 언니나 동생이 받았을까

“저는 범전동 집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니까 오히려 홀가분합니다.”

큰아들은 딸이 하나고, 작은 아들은 딸 하나에 아들이 둘이다. 나름대로 잘 살고 있지만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의 근심과 걱정은 근육병의 유전여부다.

“예전에 조봉현 회장이 아들들에게 유전되지 않았다면 괜찮다고 했지만 걱정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며느리들에게 근육병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더니 한없이 울더란다.

“팔자려니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현재는 예전부터 조금씩 관여를 하던 부산여성장애인연대(회장 이숙희)에서 비상근 부회장을 맡고 있다. 부산여성장애인연대는 1998년에 설립되었는데, 한글교실 독서 등 여러 가지 교육과 경제 여가 취미 운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 진행으로 소외된 여성장애인의 삶을 개선시키고자 사회인식개선과 권익옹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단다.

“이숙희 회장을 도와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더 이상 아무것도 바랄 게 없단다.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이미 아들들에게는 유전되지 않은 것 같기에, 제발 손자 손녀들에게도 근육병이 유전되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란다. <끝>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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