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사가는 하늘 사랑 가족입니다.    
이복남의낮은목소리
하사가
홈소개 | 상담안내 | 후원&재정 |
상담실
  장애상담 |의료상담 | 법률상담 | 성상담 | 결혼상담 | 구 장애상담게시판 |
자료실
  보도자료 | 뉴스 | 상담정보 | 관련기관 | 복지행정 | 문화향기 | 복지혜택 | 관련법 | 특수교육 | 정책제안 |
인식개선
  경상도심청이 | 첫째마당 | 둘째마당 | 셋째마당 | 넷째마당 | 다섯째마당 |독자마당 | 경상도사투리사전 |
무용지용
  건강&질병 | 지혜와정보 | 숲속의빈터 | 자유게시판 | 장애인의 유토피아 | 희로애락 | 체육관련
 newsecrecy
보도자료
작성일 2018-07-13 (금)
ㆍ추천: 0  ㆍ조회: 209    
공무원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소원 - 김영탁 씨의 삶-②
 
 

공무원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소원

뇌병변·신장중복장애 1급 김영탁 씨의 삶-②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8-07-13 16:30:26
공무원이 되라고 고등학교까지 보내 줬는데……. 방탕까지는 아니었지만 공부에만 매진하지는 못했다. 졸업 후 9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는데 떨어졌다. 부모님 아니 아버지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시 한 번 해 보거라”

그는 눈물을 머금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대구로 가서 공무원 시험반에 등록했다. 마음을 굳게 먹고 학원에 등록 했으나 작심삼일이었다.

김영탁 씨.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김영탁 씨. ⓒ이복남
 
“대구 사는 친구들이 가만 놔둬야 말이지요.”

대학에 안 간 친구들이 저녁마다 불러냈다. 부모님의 간섭도 없었고 이제 술을 마셔도 될 나이였기에 친구들과 어울려 부어라 마셔라 밤이 모자랐다.

“그래서 또 떨어졌습니다. 공무원 할 팔자가 아닌 게지요.”

그 무렵 신체검사가 나왔는데 키가 작아서 그런지 방위로 떨어졌다. 대구 50사단에서 훈련을 받고 산 너머 군부대에 배치가 되었다. 산 하나를 넘으면 군부대가 있었는데 도시락을 싸들고 산을 넘어 다니면서 소총부대에 근무했다.

“그 때 김일성이 방위병이 무서워서 못 내려온다 했어요.”

이게 무슨 말일까.

“방위는 전부 도시락을 싸들고 다녔는데 그게 폭탄일 줄 알았대여.”

당시 현역은 3년인데 방위는 14개월이었다. 그는 키가 작아서 방위를 받았는데 그의 둘째 아들은 키가 너무 커서 공익을 받았단다. 현재 공익은 2년이고 점심값과 교통비는 국가에서 지급되므로 점심은 근무하는 기관에서 먹을 수 있어서 도시락은 안 싸도 된다고 했다.

부모님도 그가 공무원 되기를 포기했는지 다시는 공무원을 하라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에게 공무원이 되라고 하실 때에는 자신과 같은 광부는 안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어쩌다보니 탄광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방위 끝나고 일하게 된 곳이 탄광이었다. 석탄을 캐는 광부는 아니었지만 탄광에서 석탄차를 밀었다. 광부들이 석탄을 캐서 석탄차에 가득 실어 놓으면 레일 위에 석탄차를 밀고 다녔다.

그러나 그 일은 몇 달 하지는 못했다. 주변에서는 형도 운전을 하므로 석탄차를 미는 일은 그만두고 운전을 하라고 조언했다.

“연탄차 조수로 들어갔습니다.”

3톤짜리 연탄차에 조수로 따라 다니면서 운전도 배우고 연탄 상·하차(연탄을 싣고 내리는 것)도 배웠다. 연탄 배달을 나가면 사람들이 기사들에게 막걸리를 주므로 기사가 술에 취하면 조수들이 대신 운전을 했다. 1년 쯤 지나서 1종 운전면허에 응시했고 학과는 바로 붙었다.

“실기는 대구 면허시험장애 옆에 있는 야매연습장에서 돈 얼마 주고 한 번 연습하고 바로 붙었습니다.”

가정집 연탄창고.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가정집 연탄창고. ⓒ이복남
 
1종 운전면허를 따고 얼마 후에 연탄차를 몰았다. 3톤 트럭에는 보통 연탄을 1,200장 정도를 실었는데 대부분은 대리점으로 운반했다. 경북일원으로 배달했는데 가끔은 개인하고도 차떼기로 계약을 했다. 가정집에 그 많은 연탄을 어디에 다 쓰려고?

“가정집은 아니고 고추농가입니다.”

예전에 그의 집에서도 어머니가 고추농사를 했지만 그 때는 양이 적어서 대부분이 태양초였다. 구창모가 부른 노래 ‘희나리’는 채 마르지 않은 장작을 뜻한다. 그런데 고추에도 희나리가 있단다. 고추를 햇볕에 말릴 때 2~3일은 부직포로 덮어서 시들하게 한 다음에 말려야 되는데 잘못해서 햇볕을 바로 쬐면 햇볕에 타서 군데군데 하얗게 바랜다는 것이다. 그밖에도 장마철에 썩거나 병이 들면 희나리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희나리 고추는 고추 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상심이자 아픔이다.

“희나리가 되면 상품 가치가 없어서 팔지는 못하고 막장 등을 만듭니다.”

조금씩 고추농사를 하는 집에서는 태양초가 있지만 대부분의 고추농사는 창고 안에 연탄불을 피워놓고 채반에 고추를 널어서 선반에서 말린다는 것이다. 현재는 건조기로 말리지만.

보통 한 차에 1,200장 정도를 싣는데 앞에는 4단 뒤에는 3단으로 싣는다. 고추농가에 갈 때는 조수도 없이 혼자서도 하차를 했다. 그런데 공무원에 한이 맺힌 아버지시라 운전기사를 하면서도 월급은 아버지께 봉투째 갖다 드렸다.
그러다가 연탄공장 배달 일을 그만 두고 당시 막 시작한 슈퍼마켓에 생필품 배달을 시작했다.

“연탄 배달은 얼굴도 탄가루로 시꺼맸는데 슈퍼 일을 하면서 거기서 벗어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휴일 슈퍼대리점 사장이 불렀다.

“오늘 00가 선보려고 아가씨를 불렀는데 회사에 교육이 있어서 못 온다고 하니 네가 대신 한 번 봐라.”

점촌에서 잡화 대리점을 하는 사장의 처제인데 고향이 김해라고 했다. 그는 얼떨결에 남의 자리에 대리로 선을 봤는데 아가씨가 괜찮아 보였다.

당시 그는 사귀던 아가씨가 있었는데 차일피일 결혼을 미루고 있었다. “나 선봤다.” 그래도 아가씨는 시큰둥했다. “나 결혼할 거야” 그러든지 말든지……. 그 말이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선 본 아가씨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어서 결혼을 서둘렀다. 어쩌면 홧김에 서둘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권00(1965년생)씨와 점촌에서 결혼식을 하고 점촌에서 살았다.

그는 경북 일대의 슈퍼에 설탕 식용유 밀가루 등 생필품을 배달했다. 처음에는 회사에 소속된 직원이었는데 첫 아들을 낳고 나서 대리점으로 독립했다. 이제 그가 사장이므로 영업도 해야 했는데 그 일대는 문경(점촌) 함창 등은 상주권이고, 예천은 안동권이었다. 그래서 상주권으로도 가고 안동권으로도 다녔다. 특히 상주는 예로부터 삼백(三白)의 고장이라 쌀 누에고치 곶감이 유명하므로 상주권에서는 삼백도 취급했단다.

그동안 열심히 배달도 하고 영업도 했기에 제법 돈을 벌어서 집도 장만했다. 둘째도 아들인데 큰애가 중3이고 둘째가 중2 무렵부터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장사가 잘 되었다면서 갑자기 왜 그랬을까.

“물건을 받았던 슈퍼가 3~4개월 어음을 끊어주고는 달아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대형마트가 생기자 작은 슈퍼들은 문을 닫았고 여기저기 부도가 나는 바람에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큰동서가 부산에 살고 있었는데 그의 사정을 알고는 다 정리하고 부산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집을 팔고 대충 빚을 정리하고 부산으로 내려 왔다. 부산에서는 명장동에 전세방을 얻었다. 하루는 집주인과 이러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집주인이 청소회사에 나가고 있었다. 운전할 줄 알면 청소차를 몰아 보라고 했다.

아파트 청소차.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아파트 청소차. ⓒ이복남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므로 기꺼이 응했다. 그가 맡은 일은 1톤 트럭을 운전해서 밤에 사람들이 문 밖에 내놓은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수거하는 일이었다. 2~3명이 한 조로 밤새도록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쓰레기봉투를 수거했다.

사람들은 그가 맡은 1톤 트럭은 야간조라 했고 압축기가 달린 5톤 트럭은 주간조라 했다. 야간조는 밤에 골목골목에서 쓰레기봉투를 수거했고, 주간조는 아파트 등에서 쓰레기를 바로 압축기로 압축해서 해운대나 생곡소각장으로 가져갔다.

“야간조를 7~8개월 하다가 주간조로 바뀌었습니다.”

그 무렵 고향에 사는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나이가 들어 탄공장은 그만두었다. 논과 고추밭은 중부고속도로에 편입되었고 약간의 사과농사를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부랴부랴 고향으로 올라가니 서울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큰 병원에 갔는데 담관암은 오래 못 산답니다.”

아버지는 몇 달을 못 넘기고 돌아가셨다. 그렇게 아버지를 보내고 나니 후회막급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에게는 아버지의 죽음보다 더 큰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점촌에 있을 때부터 아내와 사이가 좋지 못했다. 아들들은 고등학생이었는데 매일 아버지와 어머니가 티격태격 다투다보니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이럴 바엔 차라리 갈라서자고 했다. 아내도 그러자고 해서 결국 이혼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3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이복남 기자 (gktkrk@naver.com)

이복남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추천
  0
3500
1523 장애진단의 오류는 누구의 잘못일까 2018/12/14 26
1522 김봉곤 훈장과 두 딸의 ‘福자선콘서트’ 부산 공연 2018/12/11 43
1521 ‘2018 부산장애인체육인의 밤’ 행사의 씁쓸함 2018/12/07 47
1520 SBS ‘여우각시별’에서 보여 준 최첨단 웨어러블 2018/11/30 62
1519 생사에 연연하지 말라 - 박일복 씨의 삶-③ 2018/11/30 45
1518 하루는 죽고 하루는 사는 인생-박일복 씨의 삶-② 2018/11/27 57
1517 초인이 아니라 초연을 바라는 사람-박일복 씨의 삶-① 2018/11/23 79
1516 MBN ‘기막힌…실제상황’ 이혼사유 유감 2018/11/21 69
1515 교통사고 예방 인식 저해, 드라마 유감 2018/11/16 60
1514 아쉬운 KBS2 ‘볼 빨간 당신’ 휠체어 체험 2018/11/09 62
1513 김근태 화백 루브르 박물관 전시회 그 뒷이야기 2018/11/02 81
1512 '제38회 전국장애인체전' 파크골프 이모저모 2018/10/31 99
1511 JTBC 드라마 '제3의 매력' 장애인과 편의시설 2018/10/29 90
1510 결혼과 이혼 그러나 절망은 안돼 - 임상균 씨의 삶-③ 2018/10/26 92
1509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니 저절로 재활 - 임상균 씨의 삶-② 2018/10/22 106
1508 그래도 후회는 없다 - 임상균 씨의 삶-① 2018/10/19 104
1507 김근태 화백,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전시 2018/10/18 103
1506 SBS '여우각시별' 제작진 조현병 관련 사과문 게재 2018/10/17 108
1505 아쉬운 부산국제영화제 배리어프리영화 ‘시선’ 2018/10/15 109
1504 SBS 드라마 '여우각시별'에서의 조현병 - 왜곡된 폭력성 부각, 상처받는 당사자·가족들 2018/10/12 115
12345678910,,,77
대표전화 : 051-465-1722 / 팩스번호 : 051-980-0462(지역번호 포함)
문의메일 : gktkrk@naver.com 하사가장애인상담넷 : 부산시 동구 대영로 243번길 43 월드타운 503호
대표자 : 하사가 , 개인정보 관리책임자 : 하사가 , 개인정보 보호기간 : 회원탈퇴시점 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