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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작성자 에이블뉴스
작성일 2017-12-29 (금)
ㆍ추천: 0  ㆍ조회: 57    
꿈꾸는 나무의 노래 - 김밝은터 씨의 삶 - ③

 

 

꿈꾸는 나무의 노래

지체장애 1급 김밝은터 씨의 삶 - ③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7-12-29 14:05:03
그러는 가운데 그에게는 두 손이 생기는 것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고 생각했던 세계여행의 기회가 왔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입니다.”

1997년 세계구족화가협회 초대로 스위스 등 유럽여행을 하게 되었다.

“처음 해외여행을 했을 때는 정말 꿈만 같았습니다.”

구족화가협회에 들렀다가 유럽 배낭여행을 했는데 그 때만 해도 영어라고는 예스, 오케이 밖에 몰랐다. 그래서 처음 여행에서 돌아 온 후 남동생하고 어학연수 겸 캐나다로 9개월간 여행을 갔다 오기도 했다.

장가계에서. ⓒ김밝은터 갤러리 1 에이블포토로 보기 장가계에서. ⓒ김밝은터 갤러리 1
 
그리고 2004년 북경을 거쳐 장가계로 여행을 했다.

“‘사람이 태어나 장가계에 가보지 않았다면, 100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이 있다던데 중국어는 잘 모릅니다.”

‘人生不到張家界, 白歲豈能稱老翁’(인생부도장가계, 백세개능칭노옹) 이 말은 장가계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를 이야기하는 중국인들의 표현이란다.

장가계는 오랜 세월 동안의 침식작용 등 자연적인 영향으로 오늘과 같은 깊은 협곡과 기이한 봉우리로 남게 되어, 물 맑은 계곡이 어우러지는 자연 절경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상의 건축물 중 달에서도 유일하게 볼 수 있다는 만리장성도 돌아보았다.

중국의 칸막이 없는 공중화장실. ⓒ김밝은터 갤러리  에이블포토로 보기 중국의 칸막이 없는 공중화장실. ⓒ김밝은터 갤러리
 
김밝은터의 갤러리를 둘러보니 중국에서 찍은 칸막이 없는 화장실이 있었다. 그런 화장실은 다른 곳에서도 가끔 보았었다. 문제는 김밝은터 씨가 갈고리 의수는 힘이 없다고 했는데, 필자가 조심스레 물어 본 것은 예전에는 비데도 없었는데 화장실은 어떻게 했을까?

“화장실에 비데를 놓은 것도 얼마 안 됩니다. 어렸을 때는 수도꼭지에 호스를 달았습니다.”

아, 그런데 밥은 어떻게 먹을까?

“젓가락은 못 쓰고, 숟가락이나 포크는 들 수 있습니다. 그릇을 앞에 놔 주면 먹을 수 있습니다.”

마침 필자의 이웃 사무실에서 과일을 한 접시를 깎아 왔다.

“접시를 앞에 놔 주고, 포크만 있으면 됩니다.”

그는 필자에게 과일을 먹어 보였다. 사진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필자는 실례가 될까봐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 괜찮습니다. 이제는 부끄러울 것도 없습니다.”

과일 먹는 모습을 찍어도 된다고 했다.

과일 먹는 모습.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과일 먹는 모습. ⓒ이복남
 
2007년 세계구족화가협회 창립 50주년 기념행사에 초대를 받았다. 한국에서는 구족화가 아홉 명이 오스트리아로 출국했다.

“저는 남동생하고 조카랑 같이 갔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대행사 일정을 마치고 동생과 조카와 배낭 여행길에 올랐다. 체코 프라하를 거처 독일 베를린을 지나 영국 런던으로 갔다. 휴식의 장소라고 말할 수 있는 트라팔카 광장 중앙에는 분수대의 물줄기가 시원하게 뿜어 올랐고 살아있는 비너스로 불리는 하얀 대리석상의 구필화가 엘리슨 쿠퍼(Lapper Alison)의 좌상도 있다.

“나라를 빛낸 장군도 정치가도 아닌데 양팔도 없고 양다리도 온전하지 않는 장애인을 만인에게 자랑스럽게 석상을 만들어 세워놓은 영국인의 의식은 역시 선진국인 것 같았습니다.”

런던 대영박물관은 입장료도 받지 않았고 이집트, 그리스, 로마, 아프리카, 이슬람 그리고 한국, 일본, 중국, 인도 등의 유물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한국실에는 김홍도의 화집, 공예품, 등과 백남준의 그림, 월전 장우성의 그림도 있었다.

파리 몽마르트 언덕, 제일 아래 회색잠바. ⓒ김밝은터 갤러리 에이블포토로 보기 파리 몽마르트 언덕, 제일 아래 회색잠바. ⓒ김밝은터 갤러리
 
파리에서는 세느강과 에펠탑을 둘러보고 몽마르트언덕에서 파리 시가지를 내려다보기도 했다.
유럽 여행을 하는 동안 여러 나라의 문물을 접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런데 어린 조카와 같이 동행하다보니 여성들이 경계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런 것이 배낭여행의 어려움이자 묘미가 아닐까 싶었다.

그는 세계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의 일상이란 그림 그리는 일이다. 다행히 은사인 김용달 선생님 덕분에 그림을 계속 할 수는 있었지만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다.

“첫째는 남들이 손으로 그리는 것을 저는 발로 그려야 한다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가 그릴 그림 앞에 오른발이 있어야 되는데 오른발은 어느 정도 높이에 있어야 된단다. 그의 그림은 언제부터 그가 꿈꾸는 손을 그리고 있는데 그의 그림은 추상화이므로 끊임없이 추구하고 고민해야 하므로 골치가 아프단다. 그리고 그의 그림이 처음부터 유명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꿈꾸는 김밝은터 미술관. ⓒ김밝은터 갤러리 에이블포토로 보기 그가 꿈꾸는 김밝은터 미술관. ⓒ김밝은터 갤러리
 
“처음에는 돈도 없었지만 부산 미술대전에도 여덟 번 만에 입선했습니다.”

그 후 약간의 돈은 구족화가협회에서 장학금으로 지원을 받았지만 미술에 대한 것은 그야말로 7전8기였다.

“누구는 33살까지만 살겠다고 했다지만 저는 그 때 15년만 더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몇 배로 살고 있습니다.”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었다.

“지금도 꿈에서는 가끔 손을 봅니다.”

손은 그의 꿈이자 동경이었고, 다시는 가질 수 없는 손이기에 손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손은 그의 꿈이었기에 꿈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손이라면 독일 화가 뒤러의 ‘기도하는 손’이 많이 알려져 있다.

뒤러의 ‘기도하는 손’에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알브레히트 뒤러는 젊은 시절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그의 친구는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다. 뒤러와 친구는 의기투합하여 도시로 공부를 하러 떠났는데 돈이 없었다. 친구는 뒤러에게 내가 돈을 벌 테니 네가 먼저 그림공부를 하라고 했다. 그동안 친구는 뒤러의 학비를 벌기위해 노동을 했다. 뒤러는 친구의 도움으로 그림을 공부하여 제법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뒤러의 기도하는 손. ⓒ구글 이미지 에이블포토로 보기 뒤러의 기도하는 손. ⓒ구글 이미지
 
그러던 어느 날 뒤러는 이제는 친구가 공부할 차례라고 생각해서 친구를 찾아 갔다. 그런데 창밖에서 바라 본 친구는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그 기도는 뒤러를 위한 것이었다.

“주여! 저의 손은 심한 노동으로 이미 다 망가지고 굳어서 더 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내 몫까지 뒤러가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주의 영광을 위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하소서!”

뒤러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그 자리에서 친구의 기도하는 손을 스케치했다. 뒤러의 ‘기도하는 손’은 그렇게 탄생한 친구의 손이라고 한다. 참으로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알브레히트 뒤러는 1471년 독일 남부 뉘른베르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공한 세공사였고 뒤러의 대부는 안톤 코버거라는 갑부였다. 뒤러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가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도하는 손’은 1508년 뒤러가 그린 드로잉인데 당시 뒤러는 여러 가지 손 모양을 그리던 시절이었다. ‘기도하는 손’에 관한 이야기는 누군가가 지어낸 아름다운 한 편의 동화 일 뿐이라고 한다.

“제 그림을 보시면 알겠지만 제 그림은 뒤러의 ‘기도하는 손’ 같은 사실화가 아니라 ‘꿈꾸는 나무’라는 추상화입니다.”

그는 손을 잃고 나서부터 손과 팔은 그의 좌절이자 이룰 수 없는 꿈이고 동경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제게도 팔이 있고 손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는 두 손으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두 손이 있었다면 오늘 날과 같은 화가 김밝은터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제9회 오늘의 작가상. ⓒ김밝은터 갤러리 에이블포토로 보기 제9회 오늘의 작가상. ⓒ김밝은터 갤러리
 
그렇게 손을 많이 그리다보니 미술을 아는 사람들은 손 그림 하면 ‘김밝은터’라고 말할 지경이었다. 그러다보니 그런 손이 그에게 행운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2010년 1월 25일 부산미술협회 제68차 정기총회에서 제9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자로 선정 된 것이다.

그동안 많은 대회에 나가서 입선을 했고, 은사인 김용달 선생과 ‘스승과 제자전’도 했었다. 그는 죽기 전까지는 계속 그림을 그릴 것이지만 그에게 손은 좌절이자 꿈이다.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손이 등장한다. 자연이 손으로 형상화되었다가, 훗날 그가 지을 미술관이 되기도 한다. 미술관을 지어 사회에 환원하는 게 그의 또 다른 꿈이란다.

“아직은 꿈이겠지만 줄기세포전도 그런 의미를 담아서 그려 보았습니다.”

줄기세포가 활성화 되면 그도 다시 손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러나 손에 대한 꿈을 차마 지우지 못해 장애의 슬픔을 해소시킬 수 있도록 줄기세포의 연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줄기세포와 관련된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잠에 취해 깨어나지 못하여 안타까운 날들을 보내는 줄기세포여, 너는 왜 깨어나지 못 하는가, 깨어나라, 뻗어라, 자라라, 잠에 취한 유능한 줄기세포여!”

깨어나지 못하고 멈추어 있는 것은 꿈을 꾸지 않기 때문이란다. 꿈을 꾸고 희망을 가져라 줄기세포여! 줄기세포는 언제쯤 그의 팔이 되고 손이 될 수 있을까.

꿈꾸는 줄기세포展. ⓒ김밝은터 갤러리  에이블포토로 보기 꿈꾸는 줄기세포展. ⓒ김밝은터 갤러리
 
“내 그림이 많은 사람들의 눈 속에 새겨지면 나는 슬픔에서 벗어나리라”

그는 그의 아픔을 주제로 그의 한을 발산하는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그렇지만 한을 풀기 위해 손을 그리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의 생활은 많이 불편하다. 그 불편을 감추려고 한을 눌렀지만 그 한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드러내 발산하는 것이 솔직한 것 같았다. 그래서 요즘은 그 한을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있단다.

“이제 감출 것도 숨길 것도 없기에 오라는 데만 있으면 강의도 다닙니다.”

얼마 전,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으로 학생들에게 그림을 보여 주면서 강의를 했단다. 그림이 무거울 텐데 어떻게 들고 갔을까. 그는 웃으면서 주머니에서 칩 하나를 꺼내 보였다.

“요즘은 그림을 안 들고 다녀도 되던데요?”

파워포인트로 만들어서 가면 된다고 했다. 아하,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어쩌다 보니 가톨릭신자가 되었는데, 성모병원이 개원할 때 작품 한 점을 기증했는데 어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필자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다음날 혼자 성모병원을 찾았다. 병원 카운터에 물어보니 다들 모른다고 했는데 마침 한 사람이 기획실에 물어 보더니 4층 베네딕도 강당 안에 있다고 했다.

필자가 성모병원에서 찍은 선과 악.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필자가 성모병원에서 찍은 선과 악. ⓒ이복남
 
한은 한을 가진 자만이 한을 이야기 할 수 있다. 그의 그림은 다른 사람들이 한을 가지지 않도록 한의 비애를 각인시키기 위한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단다. 사람들은 그의 꿈꾸는 나무에서 무엇을 볼 수 있으며 무슨 노래를 들을 수 있을까.

발로 그리다보니 허리도 아프고 발가락도 아프다. 그런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붓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그림을 그리면 행복할까.

“행복이요? 그런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추상화를 그리다보니 끊임없이 생각하고 창작해야 되므로 오히려 골치가 아픕니다.”

그동안 세상을 참 많이 원망했다. 그러나 이제는 담담하단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그림에 몰두하기 때문에 이제는 원망도 안하지만 고통도 원망도 다 잊어버립니다.”

그림은 어쩌면 그의 삶이자 희망이며 구원일지도 모른다. 세상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직분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학생은 공부를 하고, 피아니스트는 피아노를 치고, 저는 그림을 그리는 것 말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욕심을 버리고 손을 가진 사람들은 손을 좀 올바르게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남의 것을 탐내지 않았고 그의 꿈을 위해서 그의 꿈들이 그의 작품이 된다고 했다. 그는 꿈속에서도 손을 찾고 있다고 했다. 프로이트는 “꿈이란 어렸을 때 좌절된 무의식적 욕망의 표현”이라고 했다. 그도 무의식에서는 손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꿈속여행에서는 그가 정말로 손을 잃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손이 그를 잃어버린 것인지 또 다시 몽롱해진단다. 장자의 나비처럼.

현재 그는 세계구족화가협회, 부산미술협회. 부산창작미술협회, 부산사하미술인회, 부산환경문화연합, (사)한국전업미술가협회 부산지회, 부산가톨릭미술인회, 한국미술협회 등의 회원이다. <끝>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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