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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사가
작성일 2019-05-26 (일) 19:41
ㆍ추천: 0  ㆍ조회: 27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신장장애 2급 이소현 씨의 삶

‘1.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2.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3.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 하셨느니라.

4. 수행하는데 마(魔)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하는데 마가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지지 못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모든 마군으로서 수행을 도와주는 벗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5.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되면 뜻을 경솔한데 두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여러 겁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라」 하셨느니라.

6.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내가 이롭고자 하면 의리를 상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순결로써 사귐을 길게 하라」 하셨느니라.

7.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지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서 원림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8. 공덕을 베풀려면 과보를 바라지 말라.
과보를 바라면 도모하는 뜻을 가지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덕을 베푸는 것을 헌신처럼 버리라」 하셨느니라.

9.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적은 이익으로서 부자가 되라」 하셨느니라.

10.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이 글은 ‘보왕삼매론’이다. ‘보왕삼매론’은 중국 원나라 말기부터 명나라 초기에 걸쳐 중생을 크게 교화하였던 묘협스님의 저서인 ‘보왕삼매염불직지’ 총 22편 중 제17편 ‘십대애행’에 나오는 구절을 가려 뽑아 엮은 글이라고 한다. ‘십대애행’은 묘협스님이 삼매를 닦음에 있어 방해가 되는 열 가지 큰 장애를 여러 불경에 의지하여 정립해 놓은 것이다.

중생이 사바세계에 살아가면서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살아야 할 것인가를 옛 선사들의 교훈적 이야기이자, 생활의 지혜이다. 이와 같이 막히는 것 도리어 트이는 것이요, 트임을 구하는 것이 도리어 막히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많은 장애 가운데서 보리도(菩提道)를 얻으셨다고 한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역경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어떤 장애도 이겨낼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도를 깨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평범하게 살아가는 중생임에도 온갖 고난은 왜 내게만 닥치는 것일까. 나도 이제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자.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쉬우므로 엣 성인도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지 않았는가.

이소현(1982년생) 씨는 부산 영도에서 연년생 오빠가 있는 가정에서 동생으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고향은 경북 포항이라 어렸을 때는 포항 할아버지 집에 가기도 했단다.

“아버지는 국가유공자이신데, 구월만 되면 정신이 약간 이상해졌습니다.”

구월만 되면 아버지가 이상해지다니……. 그게 무슨 말일까.

아버지는 월남전 참전용사이신데, 아마도 월남전 끝나갈 무렵의 구월에 엄청난 폭격이 있었고, 그 폭격 속에서 전우들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한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는 평소에도 어머니와 그의 남매를 못살게 굴었지만 구월만 되면 아버지의 행패는 더욱 더 심해졌다. 술을 마시고 집기를 때려 부수고 어머니와 그의 남매를 때리고 못살게 굴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아버지가 구월만 되면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해진다고 이해를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저는 그런 아버지가 너무너무 싫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싫다면 같이 안 살면 안 될까.

“그래서 오빠는 대학생 때부터 집을 떠나 멀리 **대학교로 갔고 지금도 **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도 몇 번이나 시도를 해 보았지만 제가 집을 나가면 아빠가 엄마를 못살게 굴었습니다.”

엄마가 불쌍해서 하는 수 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 왔다고 했다.      

아버지가 월남에서 돌아와 어머니와 결혼을 하고 오빠를 낳고 그가 둘째인데, 어머니는 물론이고 그와 오빠에게도 아버지가 천추의 한이라고 했다.  

이소현 씨는 영도에서 태어났으나 장전동으로 이사를 가서 장전국민학교를 다녔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무서웠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초등학교 다닐 때도 달리기를 잘 했습니다.”

학교에서 운동회를 할 때는 단거리는 물론이고 장거리도 항상 1등을 했고, 달리는 것이 좋아서 육상선수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달리기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고 오로지 공부뿐이었다.

“아버지가 공부공부 그러니까 점점 공부하기가 싫어져서 나중에는 아예 공부를 안 했습니다.”

아빠에 대한 반항은 공부를 안 하는 것이었기에, 학교에 가서도 그냥 멍하니 앉아만 있었고, 집에 와서도 공부를 하는 척 책상 앞에 책을 펼쳐놓고 앉아만 있었다.

“아버지는 술만 취하면 엄마하고 싸웠는데, 오빠도 저도 두 분의 싸움은 안 말리고 모른 체 했습니다.”

그의 목표는 학교에서 꼴찌를 하는 것이었는데 아무리 공부를 안 해도 웬일인지 꼴찌는 안 되었다.

“성적표를 받아 가면 공부 못했다고 때리는데, 아빠가 무작위로 아무데나 때리는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아빠는 회초리를 들고 와서 “어디 맞을래?” 라고 물으면 엉덩이나 손바닥을 맞았다.  아빠한테 얻어맞아도 반항도 못하고 그냥 참고 견디며 울기만 했다. 그와 오빠가 아빠한테 맞을 때면 엄마도 아빠가 무서워서 말리지도 못했다. 말리면 더 때리니까.

그런 가운데서도 세월은 흘러 금정여중에 입학했다. 아빠가 두렵고 무서웠지만, 그래도 학교에서 달리기는 잘했다.

“전력 질주로 달리는 시간만큼은 내 세상이고 자유였습니다.”

중학교 때 육상 코치가 아버지를 만나러 왔다. 그를 육상선수로 키우고 싶다며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으려고 했던 것이다.

“안 됩니다. 우리 소현이는 육상 같은 건 안 합니다. 공부를 해야 됩니다.”

아버지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코치 선생은 아쉬워했지만, 그는 육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만 해도 아버지의 명을 거역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고 아버지가 죽어라고 하면 죽어야 하는 줄만 알았다.

어머니는 그가 철이 들면서부터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봉제공장 등 여러 곳을 다녔다. 돈을 벌어야 했던 것이다.

“엄마도 없고 아빠만 있는 집에 들어가기 싫었습니다.”

엄마가 그에게 탈출구를 마련해 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와 미술학원을 다녔고 나중에는 주산 부기 등 별별 학원을 다 다녔는데 학원가는 두 시간 쯤이 저의 자유 시간이었습니다.”

학원에서 무엇을 배우는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항상 학원은 두 군데쯤 다녔는데 그 두 시간이 학교를 마치고 유일하게 놀 수 있는 공인된 시간이었고, 아빠로부터 벗어나는 시간이었다.  

“아빠가 공부하라고 하니까 더 하기 싫었고, 이래도 맞고 저래도 맞고 이왕 맞는 거 꼴찌가 목표였는데 그래도 꼴찌는 안 됩디다.”

중학교 때도 하도 공부를 안 해도 꼴찌는 아니었지만 고등학교를 갈 데가 없었다.

아버지는 딸과 아들이 공부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왜 몰랐을까.

“아빠는 자신이 못한 공부의 한을 자식들에게는 풀려고 한 모양이지만 저는 아빠의 그런 한을 풀어주기는 싫었습니다.”

zz상고를 갔다. 그의 성적으로는 zz상고 밖에 갈 곳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자식이 어떻게 사는지도 모른 체 오로지 공부공부 공부 밖에 몰랐다.

“zz상고에서 첫 시험을 치렀는데 어쩌다 보니 1등급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는 그 1등급을 지키기 위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빠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공부를 했다. 1등급을 지키기 위해서였는데 공부를 해 보니까 재미도 있었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도 생겼다.

어렸을 때는 꿈도 희망도 없었다고 했는데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는 스튜어디스가 되려고 열심히 공부했다. 스튜어디스가 되려고 xx대학 항공운항과를 지원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는 난리가 났다.

“스튜어디스는 절대로 안 된다는 거예요.”

아버지 몰래 xx대학교 항공운항과에 시험을 쳤지만 그 난리 통에 성적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었다. 시험은 떨어지고 후보라고 했다. 아버지가 추천한 대학은 동주대학교 호텔관광과였다. 그는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었지만 하는 수 없이 아버지의 뜻대로 호텔관광과에 입학했다.

동주대학교에 등록금을 내고나니까 xx대학교 항공운항과에서 합격했다는 연락이 왔다.

“이미 등록금을 납부했는데……. 스튜어디스가 안 될 팔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싫었다면서 어떻게 살았을까.

“꿈도 없고 희망도 없고 그냥 태어났으니까 사는 겁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대학 등록금은 내 주셨을까.

“아빠가 국가유공자라서 C학점 이상만 나오면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이왕 호텔관광과를 왔고 아버지는 아버지고 나는 나니까 호텔리어가 되려고 영어와 일어를 열심히 했다. 그리고 00호텔에 실습을 나갔다. 홀에서 손님에게 주문 받고 맥주도 따라주고, 서빙을 했는데 호텔이라는 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손님이 팁이라며 1,000원 짜리를 얼굴에 뿌리기도 하고, ‘가까이 와 봐’ 해서 가까이 가면 볼을 만지거나 엉덩이를 만지기도 하고…….”

처음엔 중식당에 있었는데 주방장의 성희롱이나 언어폭력도 무서웠단다. 특히 정직(원)이 되려면 자기한테 잘 보여야 한다는 협박에는 넌더리가 났다.

“00호텔 실습을 하고나니까 호텔리어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무섭고 싫어도 밖에 나오면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깡그리 잊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친구들조차 그가 아버지에게 학대 받는 아이인 줄은 잘 알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것저것 알바를 하다가 ##구청 안내데스크를 봤습니다.”

구청 안내데스크라면 계약직일까.

“용역이었습니다. 고객이 오면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보고 적절한 과로 안내했는데 몇 년이나 그 일을 하다보니까 구청직원들 보다 제가 더 안내를 잘했습니다.”

나중에는 그렇게 메모를 해 둔 내용을 정리해서 안내책자를 만들었는데 지금도 잘 사용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 일은 얼마나 했을까.

“5~6년 했는데, 어느 마트에서 카운트를 보면 돈이 더 많다고 해서 구청은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마트로 갔습니다.”

마트에서 카운트를 보는데, 하루는 으스스 춥고 큰 돌이 머리를 내리치는 것 같아서 그대로 쓰러졌다.

“그동안 아빠한테 맞아도 철이 들면서는 잘 안 울었는데 그날 처음으로 너무 아파서 울었습니다.”

마트 직원들이 택시를 태워 집으로 보냈다.

아팠다면 병원으로 가야지 왜 집으로 갔을까.

“병원에 갈 돈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직장에 다녔다면 돈을 벌었을 텐데 왜 돈이 없을까.

“대학 때부터 술을 마셨는데, 월급타면 먹고 마시고 옷 사고 다 써버렸습니다.”

아버지가 월급 가져오라고는 안 했을까. 아버지에게 갖다 주기 싫어서도 돈는 버는 족족 다 써버렸기에 수중에는 돈 한 푼 없었다.

“처음에는 감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는 식음을 전폐하고 들어 누웠다. 아버지는 일하기 싫어서 꾀병 부린다고 오히려 호통을 쳤다.

“엄마도 처음에는 꾀병부리지 말고 밥 먹으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감기 같았는데 나중에는 팔꿈치에 반점이 생기고 아팠다. 그렇게 시작 된 감기 같은 것이 3개월을 끌었다. 그제야 엄마도 이러다가 다 큰 딸 죽이겠다며 근처 내과로 데려 갔다.

내과의원에서는 여러 가지 검사를 하더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그제야 그도 감기가 아니라 예사 병이 아닌 모양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과 의사는 병명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동네 내과에서는 침례병원 류마티스과로 가라고 했습니다.”  

침례병원(浸禮病院)은 1951년 미국 침례교 한국선교회에서 부산시 남포동에 설립한 병원이다. 그 후 영도구 영선동에서 동구 초량3동으로 옮겼으나 병원이 너무 좁아서 1999년 금정구 남산동으로 이전하였으나 2017년 7월 경영난으로 폐원하였다. - 필자 주.

그는 초량에 있는 침례병원 류마티스과에 가니 당장 입원하라고 했다. 입원해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루푸스입니다.”

그를 진료한 A 의사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루푸스라니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었다. 그의 증상은 팔꿈치에 반점이 생기고 뼈마디가 시리고 쑤셨다.

루푸스의 정확한 이름은 전신홍반루푸스(Systemic lupus erythematosus)다, 주로 가임기 여성을 포함한 젊은 나이에 발병하는 만성 자가면역질환이다. 자가면역이란 외부로부터 인체를 방어하는 면역계가 이상을 일으켜 오히려 자신의 인체를 공격하는 현상을 의미하며, 이로 인해 피부, 관절, 신장, 폐, 신경 등 전신에서 염증 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루푸스는 만성적인 경과를 거치며 시간에 따라 증상의 악화와 완화가 반복된다.

루푸스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져 있지 않았다. 루푸스는 몇 가지 유전자와 호르몬,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구체적인 관계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루푸스(lupus)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늑대라고 한다. 늑대에 의하여 물리거나 긁힌 자국과 비슷한 피부발진이 얼굴에 나타나기 때문에 루프스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증상으로는 루푸스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증상은 피부 증상이다. 뺨의 발진과 원판성 발진, 광과민성, 구강 궤양 등이다. 다음은 근 골격계 증상인데 관절통 역시 루푸스 환자의 75% 이상에서 관찰되는 흔한 증상이라고 한다. 일부 환자는 부종이나 열감, 발진, 관절 운동의 장애와 같은 전형적인 관절염의 증상 없이 관절통만 나타나기도 한다.

신장 증상은 신부전이나 신증후군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특별한 자각 증상이 없다. 그러나 신기능 저하가 심각하게 일어날 수 있으므로 신장 질환의 유무를 판단하기 위해 정기적인 신기능 검사가 필요하다. 그 외에 뇌신경 증상과 기타 장기 침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루푸스는 1997년 개정된 미국 류마티스 학회의 기준에 따라 다음 11가지 중 4가지 이상이 나타날 때 루푸스로 진단하게 된다.

1) 뺨의 발진, 2) 원판상 발진, 3) 광과민성, 4) 구강 궤양, 5) 관절염, 6) 장막염, 7) 신질환, 8) 신경학적 질환, 9) 혈액학적 질환, 10) 면역학적 질환, 11) 항핵항체 등의 항목을 평가하며, 이는 전문의에 의한 임상적 평가와 더불어 혈액검사, 영상학적 검사를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루푸스는 아직 완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만, 현재 루푸스의 10년 생존율은 90% 이상이다. 이는 조기 진단, 치료제 및 치료 방법의 발달, 투석 및 신이식 등에 기인한 것이다. 루푸스의 치료는 급성 악화를 치료하고 질병의 활성도를 적절히 억제하여 장기 손상을 예방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발췌.

루푸스를 완치할 수 있는 치료제는 없다고 했다. 그가 입원해 있는 동안 A 의사는 그의 증상을 완화시키려고 노력했다.

“두 달 동안 입원해 있다가 퇴원했습니다.”

그는 A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먹고 루푸스의 증상은 완화되었다.

그동안 병원비는 어떻게 했을까.

“저는 돈이 없으니까 엄마가 마련해서 지불했는데, 루푸스가 산정특례니까 병원비는 얼마 안 나왔습니다.”

‘질병관리본부 희귀질환 헬프라인’에서는 「희귀질환관리법」에 따라 경제적 부담이 과중되는 희귀질환 대상자에 대해서는 산정특례로 등록을 하면 본인 부담금 10%만 내면된다.

현재 희귀질환 및 그 합병증으로 인한 진료의 요양급여비용 중 본인부담금을 10%를 내는 질환은 951개라고 한다. 그 밖에도 ‘근육병 등 95개 질환자로 지체장애 1급 또는 뇌병변장애 1급 대상자’에게는 월 30만원의 간병비가 지급되기도 하고, ‘고전적 페닐케톤뇨증 등 7개 질환자’는 특수조제분유나 저단백햇반 등 특수식이 구입비가 지급되기도 한다.

그는 희귀질환자로 산정특례를 신청했으므로 병원비는 얼마 되지 않았다.  

“집에 와서 아빠와 둘이 있으려니까 숨이 막혀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그래도 아버지가 조선소에서 일을 하셨는데 이제는 정년을 하시고 집에만 계셨다. 어머니는 직장에 가시고 아버지와 둘 만 있다는 게 견딜 수 없어서 알바를 찾았다.

“처음에는 건설회사 그리고 나중에는 조경회사 경리를 했습니다.”

아빠한테 반항이란 게 공부 안하고, 학원 다닌다고 하면서 놀고, 대학생 때는 술 마시고 노래하고 월급 받으면 흥청망청 쓰는 게 반항이라면 반항이었다. 아버지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길이었으니까.

“그동안 남자친구는 더러 있었지만 만나고 헤어지고 했는데 스물일곱 살 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그가 사랑했던 B 씨도 행복했던 사람은 아니었다. B 씨는 일을 하다가 다리를 다친 지체장애인이었는데 그가 사랑하는 데는 장애 같은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새어머니와 살고 있었다.

“아기들을 좋아해서 빨리 결혼하고 싶어서 아빠한테 어렵게 허락도 받았습니다.”

그가 B 씨의 장애를 이해한 것처럼 B 씨도 그의 병(루푸스)을 이해한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데서 불거졌다.

“저는 시부모와 같이 살고 싶은데 B 씨는 싫다고 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었다. 그ㅡ이 아버지에게 못 받은 사랑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시부모와 같이 살기를 원했고 B 씨는 둘만 따로 살자고 하는 바람에, 그 일로 옥신각신하다가 그만 헤어지고 말았다.

“우리 아빠한데 진절머리가 나서 좋은 아버지를 극진히 모시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B 씨와 헤어지고 나니까 그 후로는 남자가 남자로 안 보이더란다.

그래서 결혼은 안 하는 것일까.

“그렇게 실패를 하자 다시는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지금은 결혼할 상황도 아니지만…….”

그동안 오빠는 결혼을 했지만 집에는 오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여전히 직장에 다녔고, 그는 이것저것 알바를 했다. 적어도 그가 쓸 용돈은 벌어야 했으므로.

루푸스는 완치되는 병이 아니므로 그동안에도 그는 병원을 다녔다. 그동안 A 의사는 침례병원을 나와 개원을 했기에 그는 두 달에 한번 씩 A 의사를 찾아서 진료를 하고 처방을 받았다.

“작년 가을 갑자기 몸이 붓기 시작했습니다.”

루푸스가 발명한지 14년만이었다. 그는 놀라서 A 의사를 찾아 갔다. 루푸스 부작용이라고 했다. 14년 동안이나 별문제 없다가 갑자기 몸이 붓기 시작하다니…….    

A 의사도 고개를 꺄웃하면서 C대학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환자는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A 의사가 시키는 대로 C대학병원으로 갔더니 당장 입원하라고 했다. 얼마나 긴박한 상황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병원에서는 아버지를 불러서 신장이 망가져서 혈액투석을 해야 하니 사인을 하라고 하더란다.

“의사가 제대로 설명도 안 해주고 옷을 벗어라 하더니 목을 뚫었어요.”

그는 목 밑을 뚫어서 투석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장염이라고 했다.

“장염을 치료하고 나니까 살이 빠지기 시작했는데, 투석은 이미 시작되어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아빠가 딸 죽을까 봐 살리려고 사인을 했겠지만, 그가 미성년자도 아닌데 본인에게는 병명도 알려주지 않고 본인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무조건 혈액투석을 해서 너무 화가 났다.

“혈액투석을 하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일주일에 3번 하루에 4시간씩 투석을 하는데 하루는 죽고 하루는 산다고 합디다.”

그런데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설상가상으로 그는 하루는 죽고 하루는 사는 게 아니라 일주일 내내 초죽음이 되었다.  음식은 입에 대지도 못하고 토하고 잠도 못자고 뼈마디가 다 아팠다.

“혈액투석을 하면 수분도 빼내기 때문에 체중이 형편없이 줄었습니다.”

처음에는 긴급으로 혈액투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임시로 목 아랫부분을 뚫었다지만, C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동정맥루를 만들었다. 동정맥루는 외과적 수술을 통해 주로 오른쪽 또는 왼쪽 팔의 동맥과 정맥혈관을 연결해서 혈관을 굵게 만드는데 이 굵어진 혈관을 동정맥루라고 한다.

그는 왼쪽 팔에 동정맥루가 있는데 이틀에 한 번 4시간을 투석하면 초죽음이 되므로, 그동안 몇 번의 실험을 거울삼아 일주일에 두 번 3시간 반을 투석하기로 했다.

신장이 하는 가장 큰 기능은 노폐물을 내보내고 전해질을 조절하는 것이다. 신장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단계를 만성신장병이라고 하는데 이소현 씨의 경우 만성신장병은 루푸스의 증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신장은 정상 상태의 50%까지 기능이 감소하더라도 특별한 자각 증상을 보이지 않아 만성신장병은 침묵의 질환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는 루푸스 때문에 14년 동안이나 병원을 다녔는데 어느 날 갑자기 혈액투석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투석치료를 받아도 신장 기능이 회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식을 받지 못하면 평생 투석치료를 받아야 된다. 그러나 혈액투석은 신부전을 완치하지는 못해도 신부전 환자들을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편이라고 한다.

요즘처럼 의학이 발달해도 아직까지 체내 인공신장은 안 되는 것일까. 사람의 신장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휴대용 인공신장이나 신장 대체 인공신장 같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은 혈액투석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20여 년 전만 해도 혈액투석을 받는 사람들은 얼굴이 새까맸다. 인공신장 필터가 불순물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혈액투석을 한다 해도 본인이 말 안하면 겉으로는 표도 안 난다.

“C대학병원에 두 달 쯤 입원해 있었는데 퇴원하고는 D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요즘도 D병원에서 일주일에 두 번 3시간 반을 투석한단다. 루푸스는 희귀질환으로 책정이 되어 산정특례는 받지만 장애인등록은 안 된다. 그러나 신장투석은 신장장애인 2급에 해당이 되므로 C대학병원에서 퇴원하자마다 아버지가 장애인등록을 하라고 하더란다.

“혈액투석을 한 번 하는데 15만 원쯤의 비용이 들지만, 저는 10%만 내면 되니까 투석비용에다 루푸스 약값 등 한 달에 20만 원쯤은 듭니다.”

그 비용은 어디서 충당을 할까.

“제가 법니다. 요구르트 배달을 하니까요.”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종합병원이라고 했다. 빨래도 못하고 설거지도 잘 못한다고 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게 요구르트 배달인데 그것도 힘에 부쳐서 요즘은 개수를 줄이고 있단다.

“안 아파본 사람은 그 심정을 잘 모를 겁니다. 고통의 순간에는 그냥 딱 죽고 싶어집니다.”  

아버지나 어머니께서 신장이식을 하라고는 안 하시던가요?

“제가 싫다고 했습니다. 이식은 안 할 거고 이대로 살다가 가겠지요.”

혈액투석은 인공신장 필터를 이용해서 혈액 내의 노폐물을 거른 후 혈액을 다시 인체에 넣어주는 것이다. 투석치료를 받아도 신장 기능이 회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식을 받지 못하면 평생 투석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는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는 보왕삼매론을 좌우명처럼 되 뇌이며 산다고 했다.

“아빠한테 학대 받고, 온갖 병을 다 가진 종합병원으로 살고 있지만 제가 만약 지금과 다르게 살았다면 또 다른 고난이 닥쳤을지 어떻게 알겠습니다.”

그래서 성인의 말씀처럼 병고로써 양약을 삼고 있단다.

이야기가 대충 끝난 것 같아서 이소현 씨는 필자에게 사진 몇 장 보여 줬는데 스킨스쿠버를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못한다면서 어떻게 스킨스쿠버를 할 수 있을까.

“자신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지요.”

바다 속을 탐험하는 것은 그 신비의 세계를 유영하다보면 세상 모든 시름은 다 잊어버린단다.  

필자가 아버지가 폭력 아버지라고 공개해도 괜찮은지를 물었다.

“아빠는 아직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상관없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요즘도 그는 아침이면 요구르트 배달을 하고, 월요일과 금요일 오후에는 D병원에서 3시간 반동안 혈액투석을 받는다. 그러면서도 스킨스쿠버 모임에도 나가고, 아이들을 좋아해서 동네 어린친구들도 많단다.

주역에서도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이라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고 했다. 세상살이는 언제나 변하기 마련이므로 내일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늘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이소연 씨, 사는 날까지 부디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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